그러나 변용은 정서와 다른 것, 혹은 정서(‘정동’)를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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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재산분할 행위 같은 것이 아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변용은 ‘외부 물체가 인간 신체에 일으킨 작용’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우리 신체엔 즐거움이라는 감각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변용이다.(참고로 변용의 결과 신체에 나타난 흔적으로서 이미지에 대한 관념이 바로 ‘상상’이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다시 말해 변용은 주체의 능동적 실천 같은 것이 아니라 담백하게 ‘정서 작용과 그 관념’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까 무페는 스피노자의 단순한 정의에서 지나치게 자의적인 의미를 추출한 것이다. 이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실천적 목표를 위해서, “담론적인 것”을 ‘정동’과 어떤 식으로든 접합해야 하는 이론적 필요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용을 정의하는 대목(‘에티카’, 3부 정의 3)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료하다. 스피노자 정서론의 ‘실천적 함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17세기 책인 ‘에티카’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는 까닭은, 그것이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려 했던 집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20대 중반에 자신이 속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추방당했는데, 당시 스피노자에게 내려진 파문 선고문은 전례 없이 끔찍한 저주로 가득 차 있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저주했던 그 저주로 그를 저주한다. 엘리사가 소년들을 저주했던 그 저주로 그를 저주한다. 율법 책에 쓰여 있는 모든 징벌로 그를 저주한다. 그는 낮에 저주받을 것이며 밤에 저주받을 것이다. 누울 때 저주받을 것이며, 일어날 때 저주받을 것이다. 나갈 때 저주받을 것이며, 들어올 때 저주받을 것이다. 주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분노와 그의 질투가 그를 태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쓰인 모든 저주가 그를 덮칠 것이다. 그리고 주가 하늘 아래로부터 그의 이름을 없앨 것이다. 그리고 이 율법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모든 저주에 따라, 주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과 악에 속한 그를 떼어놓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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